선이 그린 노래



희곡에서 발췌



남자 1

남자 2

남자 3

남자 4

남자라는 호칭은 한자상의 뜻이고 대본에서의 인물은 남녀 구분이 없다.


중략


11.

남자 1, 신체를 위한 텍스트 (이 텍스트안의 그것은 대본 전체의 그것과는 상관없다)


개념들

계속해서 같은 것들을 생산해 내는 기계가 있다. 이 기계를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가 스스로 이를 갈아버리려고 한다. 때로는 덜컥거리며, 때로는 다른 톱니바퀴들과 부딪히며 파편들을 떨어뜨린다. 파편들이 너부러져 있다. 나는 이것을 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원한다. 하지만 이런 생산은 “이것을 해야 한다” “이것을 원해야한다”로 바뀐다. 또 다시. 이제 그만 말하고 싶지만 또 말해야하는 그것.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해져야 하는 그것. 그리고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또 말해야하는 그 폭력이 그에게 가 닿았을 때. 또한 어쩔 수 없이 행해져야하는 그것이 신체로 파고든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내던지자. 쓸모없는 것들은 버려버리자. 파편들이 다시 자리를 잡는다. 이전과는 달리. 새로운 형태로, 새로운 맞물림으로. 톱니의 이를 맞추고 돌아가려고 하지만 그러나, 사이에 뭔가 끼어 있다.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신체화를 위한 예제

-물감 없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부터 시작한다.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려 한다. 그림이라기보다는 더욱 구체적인 선, 하나.

-다음과 같은 신체화를 이루어 낼 것.

톱니바퀴의 해체, 새로운 톱니바퀴들의 맞물림.

반복된 생산이 만들어 낸 차이. 그러나 아직 뚜렷하지 않음.

결정된 가치가 드러낸 억압, 그로부터의 상태.


제한

-그림을 그리려는 손의 공간적 위치가 각 프레이즈의 단위가 된다.

-신체의 속도는 남자 1의 상태 변화의 속도에 따르지만 전이되는 과정에서 더 빨라질 수 있다.

-가능하면 동작을 반복하지 않는다.

-물감 없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서 이어지는 모든 과정 속에서 남자 1의 상태변화가 뚜렷하게 보이도록 한다.


신체화

붓을 들고 서 있는 신체는 아직 긴장이 없는 상태다. 시선은 빈 캔버스를 향해있고 손에는 아주 약해서 들키지 않을 경련만이 있을 뿐 다른 떨림은 없다. 물감 없이 그림을 그린다. 이내 포기하고 웃는다.

남자 1 : 물감 없이…… 이게 무슨 소용이야.

그러나 아직 여전히 붓을 들고 서 있다. 그리고 잠시 멈춰 서서 무언가 생각난 듯 손목을 뒤튼다. 손목이 더 이상 뒤틀리지 않을 때 다시 멈춰있다. 그리고 근육들은 다른 행위를 원하듯 조금 더 움직여 하나의 조각상을 만든다. 그리고 이내 다른 그림을 그린다. 선들이 모여 그림이 되는 선들을 그린다. 빠르다. 이번에는 아주 빠르다. 그렇게 그림을 그린다. 여전히 캔버스에는 아무런 선들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붓은 캔버스에 맞닿아있다. 붓은 끊임없이 그린다. 또 그린다. 이제는 캔버스가 문제가 아니다. 무언가 멈추었기 때문에 신체의 어딘가가 멈추고 무언가 꺾였기 때문에 신체의 어딘가가 떨어진다. 폭력이 가 닿는 그 지점. 그 지점에서 신체는 오로지 그리기 위한 몸으로 바뀐다.

화. 이 분노는 톱니바퀴를 다시 돌리는 분노이며 꿇었던 무릎을 일으키는 분노이다. 이 분노가 허공에 선을 그린다. 어느 순간 모든 분노가 멈추고 정지된 몸으로 있다. 그리고 다시 캔버스로 가 진짜 물감을 짜고 붓에 묻힌다.

사이.

선명하게 그려질 선이 결국 얼굴에 그려진다.

암전.


중략


마지막.

그것을 받는 곳.

사이.

남자 1 : 이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네요.

남자 2 : 네.

남자 4 : 말이 안 되는데.

남자 3 :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입니다.

사이.

남자 1 : 결국 이렇게 시대가 끝나는군요.

남자 3 : 시작은 요란했지만 끝은 너무나 조용하네요.

남자 2 :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자 4 : 글쎄요. 그냥 여기서 조금 기다려 볼까요?

남자 1 :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남자 2 : 그래도.

남자 3 : 조금 더 있어 볼까요?

남자 4 : 그래요.

사이.

남자 2 : 이제 뭘 해야 할까요? 어떻게 그것을 받아야할까요?

남자 1 : 예전처럼 직접 생산해야죠.

남자 3 : 7년 전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지네요.

남자 4 : 저는 하던 일을 다시 해보려고 합니다.

남자 1 : 7년 전에는 뭘 하셨어요?

남자 4 : 공장에서 부품들을 만들었습니다.

남자 2 : 어떤 부품이죠?

남자 4 : 톱니바퀴나 뭐 그런.

남자 2 : 저도 비슷한 일을 했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셨어요?

남자 1 : 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남자 2 : 아! 계속 같은 일을 하신 거네요. 무슨 일을 하셨어요?

남자 3 : 저는 원래…… 제가 그것을 나눠드릴까요?

사이.

남자 1 : 아닙니다. 또 반복될 뿐이에요.

남자 2 : 그래요. 끝이 나버린 이 시대처럼.

남자 4 : 저는 좀 주셔도 괜찮을 거 같은데.

사이.

남자 4 : 문 닫은 공장을 다시 움직이게 해야겠네요. 혹시 같이 하시겠어요?

남자 2 : 아니요. 저는 다시 돌을 깎겠습니다.

남자 1 : 그것 없이도 괜찮으시겠어요?

남자 2 : 그것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또 생길 겁니다. 그것은.

사이.

남자 1 : 아, 그 재미있는 부분. 그 뒤를 못 들었네요.

남자 2 : 저도요.

남자 4 : 뭐죠?

남자 1 : 그것을 받는 그곳의 유래입니다.

남자 4 : 아주 오래전에는 우리들도 그곳에서 같은 춤을 추었다고 들었습니다.

남자 2 : 그래요. 그 뒤에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고.

사이.

남자 3 : 그들과 우리는 같이 춤을 추고 있었죠. 어느 날, 어디서부터인가 노래가 들려왔고 그들은 노래를 따라갔어요. 그리고 그들은 다시 돌아와 끝없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결국 노래가 그것이 되었죠.

사이.

남자 2 : 끝인가요?

남자 3 : 네.

남자 4 : 정말 끝이에요?

남자 3 : 네.

남자 1 : “그들의 노래가 들린다. 우리는 춤 출 수밖에 없다.”

남자 3 : 그래요.

남자 1 : 결국 노래가 그것이 되었군요.

남자 4 : 그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요?

남자 2 : 즐거운 노래가 아닐까요?

남자 3 : 글쎄요. 끝나지 않는 노래는 왠지 즐겁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남자 2 : 즐거운 노래일 겁니다. 분명히.

사이.

남자 2 : 우리도 노래를 하나 불러 볼까요?

남자 1, 3, 4 : 네. 그래요. 네

사이.

남자 2 :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서 돌을 깎아야겠어요.

남자 3 : 저도 가보겠습니다.

남자 4 : 가서 공장을 청소해야겠네요. 아주 오랜만에.

남자 2, 3, 4, 나간다. 남자 1, 따라 나간다.

사이.

남자 1, 나가다 멈춰서 있다. 그리고 다시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남자 1, 신체를 위한 텍스트


개념들

생산은 끝났다. 새로운 생산도 새로운 공급도 끝났다. 그러나 아직 작은 톱니바퀴가 돌아간다. 또 다시 새로운 생산으로. 그러나 이 생산은 극복된 생산이자 변형된 생산이다. 아직 해방된 생산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돌아가는 톱니바퀴는 다시 선을 그리려 한다. 왜냐하면 선들이 모여 톱니바퀴를 새롭게 돌릴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톱니바퀴는 다시 돌아가는 것이기에. 결국 이 톱니바퀴가 맞물려 다시 생산하기에.


신체화를 위한 예제는 없다.


제한도 없다.


신체화

무대 앞으로 나온다. 물감을 바라보다가 들어 뚜껑을 열고 물감을 짠다. 물론 물감은 없다. 붓을 쥔다. 붓도 없다. 붓에 물감을 바르고 캔버스 앞에 서 있다. 캔버스도 없다.


사이.


선을 그린다.


조명 점점 암전된다.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