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연구] 인터뷰 기록 - 극단 춤추는허리

< 극단 춤추는허리 > 인터뷰 기록


일시 : 2022년 7월 4일 

장소 : 장애여성공감 사무실

참여 : 책임연구원 이헌재, 윤태현, 극단 춤추는허리 대표 이진희, 단장 서지원, 배우 김미진

기록 및 편집 : 차재신

  

<장애여성공감>과의 첫 만남, 배우가 된 계기

 

윤태현: 당사자분들이 어떻게 배우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서지원: 배우 중의 한 분은 내가 알고 있기로는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하고 싶어 하셨고, 고등학생 때 복지관 연극을 하시게 되었다. 저 또한 배우가 꿈이었고 알아보던 중에 <장애여성공감>을 알게 되었고, 같이하고 싶다고 말하게 되었다.

 

윤태현: 그러면 <춤추는허리>에서 먼저 제안을 한 건지? 아니면 먼저 찾아가시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진희: 서지원 님 같은 경우엔 먼저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게 되었다.


이진희: 저희 같은 경우엔 활동하다 보면 장애여성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경로가 많다. 여러 모임이 많은데 그중 본인이 원하시는 걸 선택하게 된다. 처음엔 연극이나 공연에 관심이 없다가도 다른 활동들을 통해 관심이 생겨 참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윤태현: 저 같은 경우도 복지관에서 장애인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현장에서는 배우분들과 어떻게 만나지게 되는지가 궁금했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작업을 많이 했을 텐데, 배우들과 어떻게 작업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진희: 경로 같은 경우는 굉장히 다양하다. 인권침해로 인한 상담으로 오는 분도 있고, 아니면 한글 공부를 하고 싶어서, 혹은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들어오시는 경우가 많다. 복지관 같은 경우는 프로그램화해서 사람을 모집하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프로그램이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본인이 다른 활동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하기 싫으면 안 하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문을 열어 둔 채로 받는다.

 

윤태현: 그러면 그 과정에서 함께 동행하시는 분들(보호자)은 어떻게 소통을 하는지 궁금하다. 제가 듣기로는 동행자 입장에서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과 안전을 중시하는데, 당사자와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결정은 어떻게 내리는 건지 궁금하다. 당사자의 의견대로 바로 결정이 되는 것인지.

 

이진희: 그렇다. 당사자의 결정이 제일 중요하다. 주변인의 반응이 오히려 장벽이 될 때가 많다.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 사실 장애인의 주변 사람들은 장애인이 위험한 낯선 사람들로부터 안전을 침해당할까 봐 걱정을 하는데, 그러나 <장애여성공감>에서 생각하는 가장 위험한 행위 중 하나는 바로 그 사람의 동선과 생각을 통제하려는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장애인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하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자꾸 거기에 갔다 오면 말대답을 하냐” “왜 집회를 나가냐. 인권이라는 말을 하냐. 투쟁을 하냐.” 이런 것들도 사실 주변인들로 인한 통제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주변인들과 싸울 수는 없으니 전략적으로 설득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당사자와 함께 거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를 배제하지 않는 절차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태현: 마치 삼자대면처럼 진행되는 건가?

 

이진희: 그렇다. 혹은 우리가 안내지를 써서 어떻게 진행을 할 것인지, 이동방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그러나 그 부분을 우리가 완벽하게 케어해준다는 것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해줘야 할 역할 같은 것을 함께 안내지에 작성하게 된다. 복지관에서도 그렇긴 하지만 우리 또한 당사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전협의를 하고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특히나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언제나 소외되기 때문에 당사자 의사가 대리되거나 대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권의 원칙이 이 작업 안에서 잘 반영되고, 당사자가 소외되지 않게, 당사자의 발언이 존중되고 의견이 얘기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설득의 과정에서 중요한 목표인 거고, 그것을 위해 무조건 싸우는 게 아니라 설득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애인이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고. 그것은 의학적 진단이나 규정이 아니라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같이 늘려가는 거고 이 사람뿐 아니라 같이하는 사람 또한 함께 시간을 갱신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시간을 같이 견디는 것이다. 같이 견디는 시간을 만드는 게 공동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서지원: 저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진희: 그렇다.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작품은 잘 나오면 땡큐고, 안 나오면 말고. 그것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하는 거니까.

 

윤태현: 결국엔 함께 옆에서 소통하는 분은 계속 수반될 수밖에 없나.


이진희: 그렇다. 또한 약속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서지원 팀장을 제외하고 본인이 나서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그런 상황을 너무 싫어한다. 연습 시간 동안은 일부러 나가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에서 중요한 것은 “룰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이다. 작업자이자 지원자로서 만나는 건데 나도 이 사람에게 권력을 쓸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이 사람이 인식하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왜냐면 나는 안전하고,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작업은 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든 우리들 사이에서도 그 경계는 계속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비존중할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존재하기 때문에. 온전히 평등하다는 환상을 갖고 활동하지 않는다.

 

윤태현: 우리도 연구를 하면서 계속 나오는 얘기가 자기선택과 자기결정권이다. 우리 말고도 최근 발달장애인 연구 관련해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자기결정권에 대한 말이 많아서 질문을 드렸었고. 그러면 한 분이 대표적인 사례로서, 다른 분들 또한 대부분 그렇게(배우를) 시작하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

 

이진희: 꼭 예술을 하기 위해서 왔다기보다는, 이것저것 하려고 오는 경우가 많다. 서지원 님 같은 경우엔 의식적으로 오신 거지만.



발달장애인 배우들과 함께 진행되는 공연에 대해

 

윤태현: 지원 단장님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

 

서지원: 저는 <춤추는허리>의 공연을 보게 되었고, 연극이 하고 싶어 극단을 선택하게 되었다.

 

윤태현: 그러면 그전에는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지. <춤추는허리>가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인지.

 

서지원: 생각은 있었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고, 기회도 없었다.

 

이진희: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 노동, 관계의 범주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김미진: 수많은 무대와 수많은 공연과 수많은 현장에 있었지만 그 안에 장애인은 없었지 않나. 지체장애인뿐 아니라 더더욱 발달장애인은 가시화되지 않았으니까.


이진희: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범위를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범위 외의 밖을 상상하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선택권에 대한 고민도 말씀하셨는데, 선택에 대한 결정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원이 협소하면 선택할 수 있는 범위와 힘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장애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단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관계 안에서 같이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의존적 관계, 우리 장애여성공감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한데, 독립이라는 것이 단독자로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떻게 잘 의존하느냐, 의존의 감각을 배우는 것이 독립이라고 생각한다. 선택과 결정 또한 그런 맥락에서 생각한다. 단순히 장애인의 의견을 무조건 맞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충분한 소통을 통해 작은 것까지도 같이 결정을 하는 것이 작업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진희: 그것이 공연 과정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관계와 의존. 그것이 끝까지 가능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고. 깨지게 되면 망하는 거고. 가시적으로 관객들이 봤을 때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어도, 우리 내부에서 깨지면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평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서지원: 내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인 것 같다.


윤태현: 얼마 전 <크립 캠프>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인간적 존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미국 장애법의 시초가 된 내용을 다룬 영화로, 캠프에서 생생하게 이루어지는 현장들을 체험하게 됐는데, 영화의 대사 중 “내가 배운 최고의 물리치료는 키스이다.”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이진희: 우리가 맨날 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같은 경우 물리치료는 집회에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구호를 외치면서 발성 연습이 되기도 하고.

 

김미진: 배우분 중엔 집회에 나가야 힘이 생기는 분들도 계시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서지원: 그래서 집회를 하는 것이다.

 

이진희: 자기 스트레스를 풀러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엔 사회문화적인 맥락이 있는 거니까. 배제당한 사람들이 광장에 나가 소리를 지른다는 것은 굉장히 정치적인 퍼포먼스인데, 과정에 개인적 치유도 있다. 우리가 옆집에 소리를 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광장에 나가서 하겠다는데. 결국 비슷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시작하게 된 경로는 천차만별이라는 것.

 

 

 

장애인과 존중

 

이진희: 우리가 가장 긴장하는 것은 프로그램화하지 않는 것이다. 관계가 생기고 역동이 생기고 서로에게 변화를 줄 수 있는 동료 관계를 만드는 것을 지향하려고 한다. 프로그램은 너무 교육자-피교육자의 지위를 갖게 되니까.

 

김미진: 그렇다. 권력이 생겨버린 관계는 서로 성장할 수가 없다.

 

윤태현: 나 또한 교육자로서 발달장애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어느 순간 이 시스템이라든지, 이 교육 과정 자체에 의심이 생기게 되었다. <크립 캠프> 영화가 나에게 되게 크게 다가왔다. (영화에서는)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도움을 주고, 나머진 알아서 자율적으로 하게 하는데, 거기서 힘이 생기고 존중이라는 것이 생기고, 권리라는 게 생기게 되는 건데. 그러다 보니 나도 치료, 교육 이런 부분보다는 더욱 문화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도 배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필드에서는 비장애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장애인에겐 비장애인과 어깨를 함께 나란히 하고 같은 환경과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 자체가 존중이지 않을까, 이 연구는 그런 부분을 내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배우의 등장, 이런 부분도 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기존의 공연은 항상 비장애인 배우를 따라 해야 하는 것 같은 관념에 갇힌 모습이 많았고. 근데 예술 분야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닌데, 왜 이 사람들을 따라 하도록 강요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공연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이헌재: 우리가 극장 공연뿐 아니라 거리 공연도 하고 있는데, 거리 공연에서는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거기 등장한 배우들이 가진 것들을 잘 살릴 수 있다면 재밌는 연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김미진: (거리 공연을 하는) 그런 상황에서는 나는 오히려 발달장애인의 특성이 더 확고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윤태현: 그 확고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 예시를 들어줄 수 있나.

 

김미진: 선택적으로 발달장애인을 생각하는, 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선입견이 강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작업 방식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그런 부분이 많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까 우리가 말한 것처럼 일련의 과정들을 거친 후에 발달장애인이 등장하는 예술, 연극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진희: 장애인의 몸만 전시되고 끝나는 경우가 있다. 개인의 고유성 혹은 개별성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장애라는 하나의 상징화된 표식을 남긴 채 끝나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 한국에서 번역된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책이 있는데, 장애에 대한 재현이 치유라는 방식의 사회적 억압과 폭력을 통해 어떻게 구조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장애인이 현재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한 채 과거로 회귀시키거나 혹은 뚜렷해진 미래의 세계 속으로 넘기는 점을 지적하는 책인데 참조하시면 좋을 듯하다.

 

윤태현: 저 또한 계속 고민하는 지점이다.

 

이진희: 치유라는 개념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을 억압하는 기제가 되는지를 같이 고민하지 않으면 우려하시는 문제는 늘 발생할 거라고 생각한다.

 

김미진: 우리는 의료적으로 결정된 몸이지 않나. 장애인이라는. 그래서 영원히 현재를 살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과학이 접목되면서 우리의 몸은 사라진 채 내가 가진 몸을 맘껏 활용해서 살지 못하고. 저 또한 스쿠터나 지팡이, 이런 것들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다. 현대 사회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윤태현: 저도 여러 의심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DSM-5 책에서는 장애를 질병이라고 규정하는데, 그 규정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진희: 질병을 가진 것은 맞으나 질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것이다. 질병이 무엇이냐, 아프다는 것이 무엇이냐 등. 단지 지능검사를 하고 수치화된 자료를 토대로 결정되는 것들이 아니라 ‘결함’이란 무엇이냐, ‘손상’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윤태현: 복지관에서 만나는 장애인분들은 굉장히 행복해 보인다. 저는 비언어를 계속해서 읽으려고 하는데 이분들이 가진 표정들이 밝고 행복하니까, 오히려 비장애인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진희: 그건 이분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면 다를 수도 있다.

 

김미진: 사회화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공간 안에서. 왜냐하면 그 장애인들은 선생님들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그래서 나온 표정일 것이다. 물론 정말 행복한 순간도 있겠지만.


이진희: 많은 장애인들이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말을 한다. 서지원 팀장 또한 예전 별명이 ‘미소천사’였다고 한다.

 

서지원: 그분들도 그렇게 배웠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나름의 생존방식으로.


윤태현: 저도 수업 중에는 최대한 사회복지사나 다른 분들을 제외하려고 한다. 연극의 큰 특성 중 하나가 놀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사람들의 긴장이 풀어지고 자유롭고 편하게 노는 모습을 보니까, 여기에서의 미소만큼은 되게 진실되게 느껴졌다.

 

이진희: 맞다. 지금 말씀하신 뒷얘기를 못 들어서 오해를 한 것 같다.

 

서지원: 우리도 비슷하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장애가 있건 없건 비슷한 감정이 있을 텐데 항상 웃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이진희: 저는 서로의 위치가 전복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비장애인한테 “내가 좋아서 웃는 게 아니야.”라고 말할 때. 그때가 사실 각성이 오는 것이다. 우리 작업 안에서는 그런 정치적 긴장이 많다. 그 정치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만든다. 즐겁게 웃는 속에서 긴장하지 않으면 즐거울 수 없다. 모순적이지만.

 

서지원: 처음에 만났을 땐 되게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쉽게 이야기하고 했는데, 그게 오히려 차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게 있으면 서로 이야기하고, 싸우기도 하고, 같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과 배우

 

윤태현: 나에게 배우란? 이 질문을 하고 싶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신체훈련 프로그램 or 발달장애인 배우를 위한 신체훈련 프로그램. 배우라는 단어가 있고 없고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격이 바뀐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배우가 의미하는 역할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각자의 배우의 정의가 궁금했다.

 

서지원: 책임을 같이 지는 것. 장애가 있다 보니 늘 도움을 받거나 보호를 받는 위치에 있어서 내 생각을 표현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배우를 하는 시간 동안은 나의 책임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대사가 틀려도, 몸짓이 틀려도, 약속이 안 지켜져도, 이건 나의 공연이고 내가 한 번도 사회적으로 책임질 위치에 놓이지 않았지만 직접 해보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느낄 수 있다. 비장애인처럼 해야 될 것 같다는 의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비장애인은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같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이하는 사람들과 연결을 해야 하니까. 배우는 실패고, 책임이고, 경험이다.

 

김미진: 장애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많이 있었으나 비장애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없었던 것 같다.

 

김미진: 저는 <장애공감여성> 안에서의 배우라고 생각한다. 사회 안에서의 배우라기보다, 내가 여기에서 배운 인권 관련, 장애가 있는 동료들의 삶을 잘 알고 있는 만큼 표현하는 사람. 그렇게 생각한다.

 

이진희: 우리 배우들도 각자에게 정의는 다를 텐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로서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규정화될 수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것. 그것이 배우라고 생각한다.

 

김미진: 배우로서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불안도 엄청 크다.

 

이진희: 장애인으로서 잘 보이고 싶고, 잘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질문을 늘 받았었으니까. 발달장애인의 행동을 늘 일탈행동, 문제행동으로 정의하니까.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먹고 싶다, 연애하고 싶다 등 욕구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도전행동’이라 명명되는 것은 억압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따진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저항하는 행동. 그런 의미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내가 보여주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을 신체 훈련의 목표로 많이 삼는 것 같다.

 

이헌재: 신체훈련 방법 자체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궁금하다.


이진희: 별거 없다. 걷는 것을 계속한다. 걷는 동안 어떻게 걷고 있나, 무엇을 목표로 걷고 있나 등. 거기에 자기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질문거리들을 담는다. 우리는 늘 몸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는 행위를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발달장애인분들은 자기가 하는 행위에 있어서 의미를 부여받은 적이 없다. 노동하고 있어. 참여하고 있어. 일하고 있어. 책임지고 있어. 돌보고 있어 등. 이런 명명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를 돌볼 때 내가 어떻게 돌보나, 타인을 걱정할 때 내가 어떻게 움직이지? 걱정할 때 하는 말 등 내가 이미 하고 있었지만 의미화되지 않았던 말들을 같이 찾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주제의 폭이 넓어진다. 몸 자체, 섹슈얼리티, 월경 경험, 연애 경험, 스킨십에서의 정치적 불편함. 주제를 인권 안에서 같이 구성하려 하는 것. 집회에 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집회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로소 보이니까. 구체적인 공간 안에서 장애인을 가두는 행위, 장애인을 억압하는 행위가 공권력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거기 놓인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이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 위치를 깨닫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집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2, 3년 준비의 시간을 쌓은 다음 나간다.

 

김미진: 집회야말로 공연의 과정과 정말 비슷하다. 소품도 많고.

 

이진희: (기존 훈련과) 방식 자체가 다르다기보다는 나누는 얘기들, 그리고 그 얘기들을 의미화하는 데에 기획자의 세계관이 반영되지 않나. 말을 했을 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기획하는 사람의 세계관이 계속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착하지 않으면 흩어진다. 포착하는 감각과 긴장이 계속 있어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신체 훈련은 결국 같이하는 비장애 동료들이 훈련하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훈련하고 바뀌지 않으면 포착될 수 없다.

 

서지원: 지체장애인도 마찬가지고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이진희: 이분들이 잘 보이기 위해서나 혼나지 않기 위해서나 본인이 돋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 것을 할 수 있게 내가 반응할 것인가, 내가 알아들을 것인가, 상호작용인 것 같다.

 

서지원: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렵고, 또한 일상적인 것을 같이해야만 알 수 있는 게 있다.

 

이진희: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장뿐 아니라 다른 공간을 가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김미진: 같이 발달장애인 여성분들과 식사하는 것, 맥주 마시는 것, 한강 가는 것 등 같이 노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이진희: 친구가 되는 것. 동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협의점을 찾는 것.

 

윤태현: 저도 수업을 하는 도중에 일방적인 감정 표현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카페라고 생각하자” 정하고 그분들과 함께 자율적으로 보냈던 시간이 소중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니 평소 우리가 수업에서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 자기 이야기들을 막 꺼내기 시작했다.

 

이진희: 우리도 그런 것을 많이 한다. 복지관에 가면 보통 프로그램은 실내에만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했던 것은 본인이 자기 공간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본인들이 움직일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 같은 것들을 소개한다. 같이 기차놀이 같은 것도 하고.

 

김미진: 평소와는 다른 몸짓과 소리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듣지 않았던, 내가 내지 않았던 소리들, 몸짓들. 그 선을 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진희: 경계를 허무는 것이 중요한데, 발달장애인 프로그램은 늘 선이 있다. 그 선을 치는 사람은 늘 보호자나 전문가들이다.

 

윤태현: 제 수업의 사회복지사 담당자도 그랬다. 수업에서 신문지를 찢고, 분노의 감정을 다루는 중요한 작업을 하는데, 담당자가 반대의 의견을 표명하였고 그 사람을 설득하는 데에 한계가 느껴졌었다.

 

이진희: 복지관 선생님들이 먼저 이런 프로그램들을 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성교육을 할 때도 주변인들을 먼저 교육한다. 부모님들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포메이션을 잘 주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과 신체 훈련

 

윤태현: 신체 훈련 혹은 배우 훈련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실 부분이 있는지.

 

이진희: (장애인과) 같이하는 사람들이 공동작업자로서 몸이 변화되는 작업이 수행되지 않으면, 당사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변화를 기대하거나 촉진하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가르침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같이 어떻게 변할 것이냐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동료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처음부터 되는 것은 아니다. 기획하는 사람의 가이드 역할, 즉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한데 언제까지나 이끄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주도권을 형성할 수 있는 방식이 의식적으로 끼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지원: 일상 연습이라는 것을 하는데, 각자 준비한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윤태현: 제일 궁금한 건, 우리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부분인데, 신체 훈련이라는 것은 의미도 목적도 다양하다. 물리적으로 근육을 이완시킨다는 정의도 있고. 과연 이런 부분이 의미가 있을까? 분명히 다른 목적성과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우리가 했던 것은 각자 우리가 했던 신체 훈련에서 좋았던 기억, 경험들을 나누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이 활동을 하면서 신체와 연관된 훈련과 과정 중에 제일 기억에 남거나 좋았던 것을 나눠줬으면 좋겠다.

 

김미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미술에 관련되어 있지만 신체 훈련이기도 했던 미술 워크숍이었다. 온 공간에 비닐을 깔고 배우들이 비옷을 입고 내 형상을 먼저 그려보고, 그 공간을 물감으로 채워보는 것. 그 공간을 구르든 기든 어떤 방식으로든 휘젓고 다니는 경험이 너무 좋았다. 지원님도 중증장애인이긴 하지만 그때 배우로 활동했던 분들 중 두 분은 더 장애가 심했다. 한 분은 계속 누워 계시는 분이 있었고. 근데 그분들이 그 시간을 너무 좋아했다. 최선을 다해서 그 시간을 함께했던 것이 좋았다. 입으로 붓을 문 채 그리고, 몸으로 뛰어들어 비옷을 물감으로 적시는 과정들. 움직임, 소리, 색깔 등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감각들이 있다 보니 모두가 좋아했던 것 같다. 무대 위에서 공연한 기억도 좋았지만 그때의 기억은 모두가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도.

 

이진희: 이 사람은 누워 있어서 혼자 이동해본 경험이 없는데 누워서는 갈 수 있다. 물감이 뿌려진 커다란 비닐 위에서 이동한다. 이동하면서 스스로 이동한다고 의식하게 된다. 저는 그것을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지. 어떻게 이름 붙일 것인지. 이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다른 치료사 혹은 강사가 이름 붙이느냐가 아니라 스스로 이름 붙이는 것. 여기서 지식의 주도권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전복시키는 것.

 

김미진: 강의를 하시는 분조차 이분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선을 그릴지 짐작을 못한다. 저는 그 점이 너무 흥미로웠다. 강의자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참여자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따라 진행될 것인지. 그것이 너무 좋았다.

 

윤태현: 이전에 봤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김인규 선생님 연구가 생각나는데 “프로그램이 없는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 “프로그램 대신 매체가 들어가야 하고 거기서 그들이 자기가 원하는 개별성을 지녀야 한다.” 저는 그 말이 되게 신선했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저 또한 자폐 스펙트럼의 아이들을 매주 만나는데, 이게 절대 프로그램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따로 놀고 내가 정의한 대로 안 되는데. 이게 “내가 잘못하는 건가?” 처음엔 나를 의심하다가 나중에 동료들도 같이 의심하는 순간들을 겪기도 했다. 왜냐하면 매체에 따라서 아이들이 원하는 감각이 다르고 또, 그에 따라 애들이 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너 이걸 원하면 이걸 해봐”, 옆에서 응원해주고 동행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들한테 필요한 건 이것이구나.

 

이진희: 그런 얘기가 사실 장애인권운동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루어졌었다. 자립생활운동에서 얘기하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우리를 프로그램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라.” 그게 이제 와서 적극적으로 얘기되는 것 같다. 특히나 장애예술교육이라는 바운더리 내에서는 적극적으로 가져와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들의 끝없는 자립생활운동. 그 안에서 싸워왔던 것. 참조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지원: 워크숍보다 일상에서 어떻게 관계 맺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상적으로 관계 맺을 때 언어장애가 있기 때문에 타인이 알아듣기가 어려운 상황이 많다. 인간관계로 봤을 때 어떻게 관계 맺고, 그 방법들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워크숍 수업 또한 중요하지만, 일상 또한 같이했기에 지금 나의 말을 거의 다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것 또한 중요한 작업인 것 같다.

 

이진희: 의식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다. 얼마나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지. 예를 들어 통역 자체가 워크숍이다. 내 말을 잘하려면 내 경험만 말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경험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듣고 전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워크숍이라고 생각하고, 장애는 특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장애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면서 장애 자체를 상대화하는 것. 장애인이 행위의 주인이 된다고 할 때, 자기 경험을 상대화하는 것. 장애란 무엇일까, 이 사람의 장애를 소개함에 있어서 서로의 장애에 있어서 관찰해보자, 소개해보자라는 이름으로 말을 하는데, 이 사람은 이런 특징이 있다.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으면서 장애에 대한 명명을 다르게 하는 것. 우리가 했던 것들은 이런 것이 있다.

 

김미진: 일상적으로 회의를 하기 위해 역할을 부여한다고 할 때, 저는 지원님의 통역 역할도 맡는다. 발달장애인 분들이 말할 수 있게. 그럴 때 사람들이 집중하게 된다.


이진희: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역할을 맡는 게 중요하다. 누가 책상을 펼칠 건가 접을 건가, 네모나게 앉을 건가, 동그랗게 앉을 건가, 그것을 정할 때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 그 과정을 거치는 게 작업을 시작할 때의 질을 바꾸는 것 같다.

 

김미진: 역할에 임할 때 자기 자신이 뚜렷해지는 것 같다.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그럴 때 비록 느리고 잘하지 못해도, 함께 조력하면서 같이해나가는 것이다.

 

윤태현: 함께하시는 다른 배우의 장애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이진희: 그런 부분이 말하기가 곤란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장애여성들은 똑똑하다.” “경증이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시간의 문제인 것 같다. 어떤 배우는 처음에 표현을 “몰라요”밖에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어는 상호관계가 있어야 개발되는 것 같다. 이분 같은 경우엔 시간이 지나면서 글도 잘 쓰고, 시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역량이라는 말을 관계적 역량이라고 표현한다. 한 사람의 역량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역량을 다 가진다. 우리 셋은 서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들(인터뷰어)이 주의 깊게 들어주기 때문에 우리 말이 중요해진다. 화자만의 역량이 아니라 청자의 역량이 중요한 것처럼, 관계적 맥락에 따라 특성이 달라진다.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김미진: 프로그램이나 일상이 구분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함께 있는 시간이 다 일상 같다.

 

이진희: 비장애 배우도 마찬가지다. 문화계 성폭력 문제도 마찬가지지 않나. 위계적인 관계가 뚜렷할 때 오히려 더 많은 표현이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성폭력 같은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고민 자체는 비슷한 것 같다. 워크숍 할 때 일상적인 얘기를 연결하려고 많이 생각한다. 어디 가는지, 어떤 말을 제일 많이 듣는지, 왜 가는지. 시설에 있는 분들은 워크숍 때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물 내려가는 소리라고 한다. 백 명 정도가 한 건물에 살고 씻을 때는 화장실을 동시에 쓰니까. 그런 것들이 결국 비장애인들이 이 세계를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비장애인들이 계속 감각하고 느끼고 깨달을수록 신체 훈련의 의미 자체는 달라지는 거다. 이분들의 행위 과정의 명명 자체가 달라지는 거고.

 

김미진: 그래야 강의를 하셨던 분들도 이것들을 활용할 수 있지 않나. 동료 배우들한테나 나의 가족한테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주제이고 소재였으면 좋겠다. 나 또한 이 활동을 하면서 초반에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 혼자 알고 있던 이야기였는데 그 후에 ‘이것은 아니다’고 느꼈다. 수많은 유명인들도 회자되었기 때문에 그 위치에 계속 있는 거라고 생각되어서,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을 붙들고 몇 마디씩이라도 계속해봤는데, 지금은 내 주변 사람들도 귀를 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시간이 무척 걸리는 일이다. 이 공간과 시간을 함께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귀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체감했다.

 

이진희: 주제 의식이나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방, 내 물건, 내 통장 등 나와 관련된, 내가 소유한 물건들을 매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장애인은) 사생활을 너무 침해당하니까. 사실은 몸도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계 안에서 존재하고 어떤 공간 안에 존재하고 어떤 물건들을 쓰고 이런 것들이 몸의 작용이고 영향을 미친다. 통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내 몸을 쓰는 감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내 장애인복지카드를 내가 가지고 다닌다.’ 복지카드도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해보진 않았지만 그런 것들로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윤태현: 저도 이번에 공연 준비를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처음엔 브레멘 음악대를 가져와 공연을 하려고 했는데, 중증자폐 1급인 분과 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았다. 그래서 틀을 다 부수고 개별성의 관점으로 들어갔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감정 하나씩 골라라, 자기가 생각나는 단어를 써보라고 했는데 그러면서 그들의 욕구를 제가 더 분석하게 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이분이 진짜 하고 싶었던 건 노래가 하고 싶었던 거구나.’ 하면서 장면을 다시 짜게 되고. 다른 사람은 자기가 무시당했던 분노의 감정들을 썼다. 어떤 말을 들을 때 무시받는다고 느끼냐, 그러면 어떤 말이 듣기 좋냐 등. 그렇게 그들에게 맞춰진 대본을 짰더니 어쨌든 진행이 되었다. 내일모레 공연인데, 그 접근을 기존의 내 관점으로 들어오게 하는 게 아니라 다 부수고 이들 안으로 들어가 개별성의 관점에서 하나하나 소통하니까 공연이 가능해진다고 느꼈다.

 

김미진: 저도 그렇고 배우님들도 그렇지만 공연을 하면서 느낀 건데, 연극이건 퍼포먼스건 내 이야기가 들어가 있지 않은 이상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있어야 관심을 갖는다. 지원 님도 처음 이야기를 했던 게, 무대 위에서 했던 이야기가 결국 지원 님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연극을 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장애인과 몸


윤태현: 마지막으로 대본을 어떻게 작성하고 활용하는지, 공연이 올려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이진희: 장면 만들기를 끊임없이 한다. 장면을 만드는 것에서 모두의 공감대와 관심이 집중되는 장면과 대사를 같이 뽑는 것이다. 정리해주시는 극작가가 있긴 한데, 사실은 이 공연 창작 워크숍을 하면서 나는 장면을 열심히 만든다.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워크숍이 있는 거고, 그 과정에서 채취한다. 수집하고 채취한 것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고. 그래서 사실은 ‘대본 나와서 연습하는 공연’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공동의 기억, 공동의 사건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윤태현: 이야기하면서 서로 맞추는 것.

 

이진희: 그렇다. 이야기하면서 공동의 대본을 만드는 것. 연습은 이미 장면 만들기에서 시작된 것이고. 대본이 나왔을 때 함께 보면서 수정하는 작업을 갖는다. 자기의 언어로. 대본이 있는 공연의 경우엔 그렇게 하고, 대본 없이 하는 경우엔 연습을 반복하면서 자기의 계산이 나올 수 있게 노력한다. 언어화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것. 그리고 자기 리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늘 어땠는지, 의견을 듣고 평가하게 하는 것을 매일 한다. 시작할 때 목표를 같이 설정하고. 자기가 주도하고 말하고 주인이 되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

 

이진희: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오래된 개념이긴 한데, 외국의 어떤 장애학자가 장애인의 권리나 존엄을 얘기하면서 위험의 존엄성을 얘기한다. 위험의 존엄성의 의미는 당사자가 결정했으면 위험해도 괜찮아, 라기보다는 우리가 안전해야 되기 때문에 존엄을 포기할 순 없다. 존엄함을 지키는 게 가장 안전한 방식이고 장애인 당사자들은 그동안 너무 박탈되었기 때문에 무엇이 안전한지도 다시 쓰여야 하고 위험할 수 있는 선택들 속에서 자기 존엄을 찾아가야 한다. 이런 맥락이다. 그것을 참조해서 <춤추는허리>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실패’라는 말이다. 실패하는 연습실. 우리의 연습은 계속 실패한다. 실패할 권리가 일상에서 보장되지 않는다. 사회가 계속 억압하기 때문에. 관계도 축소되고 내 몸의 움직임도 축소되는데 연습실에서는 최대한 실패하고 그러면서 실패의 가치를 같이 읽을 수 있어야 우리의 훈련이고 성장이다. 그것이 예술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김미진: 지체장애 여성이든 발달장애 여성이든 그 특성이 고유하기 때문에 각자가 나올 수 있는 기량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기 몸을 자각하는 것.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함께하는 것.

 

이진희: 정리해서 말하자면 몸에 대한 자각이 전문성이나 움직임이나 그런 여러 자극들을 떠나서 정치적 자각이 몸을 움직이는 데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장애 예술에서 그 정치성이 덜 다뤄졌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그 부분을 많이 말하고 있다. 내가 어디에 있고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내 몸이 어디로 가야 될지를 판단하는 것. 여성들이 사회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폭력이나 시선에서 여성들이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자각은 몸을 움직이는 데에 있어 되게 중요한 자각이다.

 

서지원: 그냥 자기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생각하시면서 살면 어떨까, 이렇게 생각한다.

 

윤태현: 얘기를 듣다 보니 몸에 집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하다.

 

이진희: 우리는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여성이라고 사회에서 구분된 몸이라는 것들이 되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런 몸의 차이들이 어떻게 사회적 차별로 연결되는지 궁금한 것이다. 사회는 차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장벽을 만들어서 차별을 만든다. 이것이 사회구성론인다. 우리는 여러 몸으로 태어나는데, 특정한 구조 안에서 차별이 발생한다. 이게 사회에서 차별을 만든다, 사회적으로 구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관점만으로는 충분히 내 경험을 설명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인 경험일 뿐이고. 그러나 나는 그런 사회적 차별만 경험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몸과 만나기도 하고 살아가기도 하지 않나. 이 몸을 통해서. 몸을 통해서 겪는 고통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화해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 것들이 얘기되어야 사회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를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몸을 중심으로 한 얘기들이 페미니즘과 장애학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적 차별만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몸들이 겪는 고유한 경험들이 계속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얘기들로 사회가 다시 구성되어야 한다.

 

서지원: 재밌는 건, 몸은 계속 바뀐다. 바뀐 몸은 바뀐 몸으로 계속 살아간다. 이제는 노년의 몸을 얘기하게 될 것이다. 노년 여성으로, 노년 장애 여성으로.

 

이진희: 그래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사회 사람들의 인권이나 보편이나, 정책 등 모든 것들이 다시 쓰여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김미진: 한 사람의 몸 안에 장애 여성, 성별 등 사회적인 위치가 내 몸 안에 다 있는데, 우리가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지금 당장 현재의 내 몸에 대해 집중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더 이야기의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것 같다.

 

윤태현: 이 정도로 인터뷰를 마치겠다. 좋은 얘기를 해주셔서 너무 뜻깊은 시간이었다.